(요약)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감독:박광수 / 1995년, 한국
비 오는 날 우산을 팔던 청년 전태일은 평화시장 피복공장에서 환기도 잘 안되고 좁고 어두운 곳에서 재단사 보조로 일하기 시작한다. 그곳에서는 환풍기도 없이 먼지가 많은 열악한 환경에서 자신보다 어린 동생들이 충분히 쉬지도 못하고 긴 시간을 일하고 있었다. 화장실 가는 것도 눈치를 보며 가야하고 이틀 동안 잠을 안 자며 일해서 힘든 직원에게 사장은 졸음이 사라지는 주사라며 직접 주사기를 가지고 다니며 직원들에게 혈관주사를 놓는다. 직원들은 그렇게 쉬지 못하고 환풍기도 없어 먼지가 가득한 공간에서 잠도 못 자고 밤낮으로 사장이 시킨 일만 계속하고 있다. 그러던 중 한 어린 직원은 결국 폐병을 얻어 피를 토하지만 직원은 일할 수 없는 것에 대해 걱정하고 회사 관리자는 그로 인해 일에 차질이 생기는 것만 걱정하며 다른 직원들에게 계속 일만 시킨다. 그런 것을 보고 전태일은 노동법에 관심을 갖고 노동법에 대한 책을 보게 된다. 그 책을 통해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기 시작한다. 전태일은 공장에서 보조 사원들이 잠도 못 자고 점심시간에는 밥도 잘 먹지 않고 졸기만 하는 것을 보고 어머니에게 얻은 차비로 풀빵을 사서 보조 직원들에게 준다. 그 사원들은 그 풀빵을 먹어가며 일을 하게 되고 전태일은 차비가 없어 집까지 걸어가다가 통금시간에 걸려서 파출소에서 자고 가는 일이 반복된다. 시간이 지나 재단사가 된 전태일은 어린 직원들에게 집에서 잘 수 있는 시간을 주기 위해서 공장의 마무리 일을 혼자 맡아 하고 직원들은 먼저 퇴근시킨다.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에 대해 동료들에게 알려주며 예전에 공장 동생들이 폐병에 걸려 공장에서 쫒겨 나갈 때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며 자신 자신을 스스로 바보라 칭하며 근로기준법에 따라 인간적인 대접을 받기 위해 바보회라는 것을 만들고 노동청에 근로기준법을 어기고 행해지는 불합리한 근무 형태에 대해 알리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노동청 관계자는 전태일의 말에는 귀 기울이지 않는다. 계속 확인 후 연락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근로기준법 준수에는 아예 관심이 없었다. 전태일은 공장에서 쉴 틈 없이 일을 시키려는 사장에 대해 근로기준법에 따른 휴식 보장을 요구하다 마찰이 발생하여 공장을 관두게 되고 생계를 위해 막노동에서 일을 시작한다. 그러던 중 전태일은 평화시장의 어린 동생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 그곳으로 꼭 돌아가 그들을 돌보기로 마음을 먹는다. 다시 평화시장 피복공장에서 일하게 된 전태일은 노동청에 다시 방문하지만 공무원의 반응은 여전히 차가웠다. 그러나 그때 우연히 그곳에서 신문기자들을 만나게 되고, 신문기자들을 통해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 현실을 세상에 알리고자 전태일은 삼동을 만들고 평화시장, 동아시장, 통일상가 세 건물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이 겪는 불법적이고 비인간적인 노동 현실을 신문을 통해 세상에 알리고 행동으로 옮긴다. 노동청에서도 비로소 전태일이 알리는 내용을 들여다보지만 여전히 공장의 사용자 입장에서만 생각한다. 이에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준수를 위치는 시위를 하지만 경찰이 방해하고, 공장의 사용자들은 직원들에게 시위에 참여하지 말 것을 협박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태일은 불법적이고 비인간적인 노동 현실을 알리기 위해‘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라는 외침과 함께 노동법 책을 들고 분신하여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된다.
(감상/해석)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감독:박광수 / 1995년, 한국
20대에 봤던 영화였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다시 한번 보게 되었다. 20대에 영화를 처음 볼 때는 그 당시 나의 경험으로는 깊숙이 이해하지 못했던 영화였고, 막연히 불의에 맞서 저항한 인물에 대한 영화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수년간 근로 경험이 있는 상황이라 영화가 의미하는 바를 깊숙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일하지 않았던 아주 열악한 시대의 노동 현실에 대해 다시 한번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어떻게 그러한 환경에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절에는 모두가 다 힘든 시절이었다’라고 하지만 특히 노동자들이 아주 힘든 시기였던 것 같다. 성장을 우선시 하다 보니 간과하고 지나간 것들이 많고, 그러한 것들이 사회적으로 쌓여 많은 부조리를 양산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시절보다 지금은 훨씬 더 좋은 환경이 되었지만 그렇게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전태일 열사와 같은 분들의 끊임없는 헌신적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느꼈다. 만약 내가 그 시대의 노동자로 살았더라면 전태일 열사처럼 자기를 희생하면서 사용자에 맞서 싸울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부끄러운 생각이지만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는 속담처럼 굳이 앞장서려고 하지 않고 하루 살기가 바쁘고 힘들어서 현실에 안주하며 그냥 그냥 살았을 것이다. 아마도 나처럼 부당함을 보고도 현실의 벽을 이기지 못해 포기하고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부당함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전태일 열사에게 대단한 존경심을 느낀다. 특히, 여러 번 의지가 꺾였지만 포기하지 않고 ‘올해와 같은 내년을 남기지 않기 위해 결단코 투쟁해야겠다’라는 의지를 다지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조금씩 나아가는 모습에 감동을 하였다. 요즘에는 그 시절보다 많이 나아진 상황이지만 아직도 많은 곳에서는 여전히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곳이 있다고 생각한다. 인터넷에는 귀족노조라고 하여 노동조합에 대해 안 좋은 인상을 주는 글들이 많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나 또한 그러한 귀족노조가 있다고 생각한다. TV 등을 통해서 접한 내용을 예를 들면, 어느 회사에서 사용자에게 노동조합이 요구한 사항을 보면 국민의 상식을 넘어서는 것을 노동자의 권리라고 하여 사용자에게 요구한 노동조합이 있다는 뉴스를 접한 기억도 있다. 권력이 있는 곳은 언제든지 부패할 수 있다. 노동조합이 과도한 권력을 가지면 노동조합 또한 부패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런 부분은 매우 일부분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인터넷이나 TV를 통해 접하는 노동조합의 소식들이 귀족노조라 하여 노동조합에 대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많은 곳에는 노동조합조차 없는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많이 있으며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유명무실한 경우도 있으며, 여전히 근로기준법이 지속해서 준수되지 못하고 합당한 처우를 받지 못하고 사용자의 강요를 받으며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도 많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러한 곳에 초점을 맞추어 전태일 열사의 유지를 받들어 노동자가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사회적인 분위기를 지속해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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